애쓰는 영웅들 박시내 | 문유소의 작품은 물감이 덩어리째 얼기설기 엉겨 있는 형상이다. 덩어리 위에는 거친 무언가가 슥 긁고 휩쓴 흔적이 보인다. 보라색과 초록색, 갈색과 형광빛이 도는 핑크색. 그 위를 지나가는 티타늄 화이트. 그다지 조화로워 보이진 않는다. 그리고 그 붓질의 형상은 여성 신체가 필연적으로 내보이는 팔 길이라는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며, 작가의 작업실에 들어가는 캔버스 크기와 개수에 대한 타협이다.
⁋ 임재균의 작품은 좁은 공간에 철사 더미를 보관하기 위해 꾹 눌러 구겨버린 것처럼 보이는 형상이다. 치열함보다는 무질서함으로 아무렇게나 꺾여 있는 빛바랜 구조물 위에 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은 채로 굳어버린 형상이다. 그 먼지는 한참을 들여다보아야지만 시선에 걸리고, 보드랍게 보이지만 돌처럼 딱딱하기만 하다. 조각의 사방에 붙은 받침대는 작가가 작품을 이리저리로 굴리며 만들고, 그 과정이 결과물로 남는 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방증이다.
두 작가는 전시장을 구성하면서 나름대로 ‘대결’이라는 주제를 잡고 전시의 제목도 ‘링’(Ring)이라고 붙였다.01 이름 붙임은 아주 간단하게 허름한 화이트 큐브를 대결의 장으로 만든다. 링이라는 공간은 크기가 한정된다. 링 밖에서 펀치를 날리면 범죄다. 링 밖으로 나가면 패배한다. 그래서 그 좁은 공간을 빙글빙글 돌면서 서로를 탐색하고 상대를 한 번에 뒤집을 타이밍을 노리며 서로를 경계한다. 전시는 그 긴장과 찰나의 순간에 위치한다.
⁋ 조각과 회화가 초라한 링 안에 우열 없이 서로 엉켜있다. 매우 낮은 층고와 창을 가리기 위해 급히 제작된 가벽은 링의 공간적 한계를 더욱 가시화한다. 문유소는 3개의 캔버스를 이은 평면 작품을 비정형의 벽에 걸기 위해 캔버스를 사선으로 꺾어 걸 수밖에 없었고, 임재균은 작품을 놓을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해 좌대 없이 적당히 바닥에 작품을 내려놓아야 했다. 전시 구성의 화법도 없고 동선이랄 것도 없어서 관객은 작품 사이를 이리저리 피해 다녀야 한다. 뾰족한 철사의 끝은 캔버스를 당장이라도 찌르고 들어갈 것 같고, 조각은 캔버스라는 거대한 이미지의 벽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눌려 있다. 두 작품은 서로를 충실하게 방해하고 있어서 개별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려는 관객의 노력은 무용지물이 되고, 서로의 간섭 없는 전시 경험은 불가능하다. 조각과 회화는 서로를 가리고 있다. 두 작품 간의 대결은 어떤 것도 얻는 것 없이 잃는 것만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