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평의 이미지 번역은 궁극적으로 언어들 상호 간의 가장 내밀한 관계를 표현하는 일에 목적을 두고 있다.04 벤야민은 「번역가의 과제」를 통해 번역이 원전과의 유사성을 본질적이고 최종적인 목표로 삼아 추구한다면 어떤 번역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원전은 지속적인 시간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살며 변하기 때문이다. 그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말은 번역에서도 적용되지만, 의미와 관련해서 번역의 언어는 언제나 그 말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서 ‘순수 언어’를 강조한다. 작품 속에 마법으로 갇혀 있는 그 순수 언어를 작품의 재창조로써 해방하는 것이 번역가의 과제라고 하면서.05 요컨대 번역가의 임무는 언제나 작품과 세계의 시차를 고려하여 이국의 언어를 자신의 언어로 이동시키면서 다른 문화, 다른 믿음의 시스템과 지금 이곳의 시스템 사이의 간극을 확인해보는 것이다.⁋ 번역이 작품의 ‘계속되는 삶’에 개입하는 것처럼, 벤야민은 비평 역시 작품의 삶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다만 번역과 다르게 비평이 추구하는 것은 작품이 탄생한 맥락 속에서 비평 주체가 자신의 시대에 해독할 수 있는 ‘진리내용’에 관한 인식이라는 점이다.06 번역이 이곳에서 읽지 않은 것을 새롭게 쓰는 작업이라면, 비평은 ‘결코 쓰여지지 않은 것을 읽는’ 작업이다.07 다시 말해서 번역은 작품이 탄생한 시대 이후 삶에 관해 쓰는 글이며, 비평은 작품이 살아온, 혹은 살고 있는 지금에 관여하며 쓰는 글이다. 그의 비평적 글쓰기는 장르적으로는 문학비평을 염두에 두고 구상한 것이 대다수이지만, 실천으로서 비평을 이야기할 때면 미술비평 역시 나란히 두고 서술해 볼 수 있다. 벤야민에 따르면 비평은 예술작품에 대한 ‘해석’과 동일한 것이며, 해석은 매 시대에 고유하게 전개된다.08 이때 연구자 최성만은 해석에 관해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그것은 작품을 둘러싼 사실들을 역사적 자료로서 실증주의적으로 확정하는 일도 아니고, 수용자의 우연적이고 일시적인 인상을 기술하는 일도 아니다. 비평에 관여하는 해석은 시간적 제약 속에서 비평 주체가 처한 현재에 대한 역사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상과 만나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다.09 ⁋ 그럼에도 질문은 남는다. 어떻게 개인의 판단이, 한 시대가 공유하는 ‘진리내용’을 인식할 수 있다는 말인가? 주관적 해석과 역사적 해석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단 말인가? 벤야민이 정향하고 있는 칸트의 철학적 프로그램은 인간의 판단력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판단력 일반은 보편과 특수 사이에서 활동하는 능력으로서 우리는 판단을 통해 대상, 나아가 세계와 관계하게 된다. 즉 우리와 대상의 관계는 판단이라는 능력을 통해 매개되는 것인데 규칙, 원리, 법칙이라는 보편으로부터 특수한 것을 포섭하는 일은 규정적이며 특수한 것으로부터 보편을 발견하는 것은 반성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특수를 포획할 수 있는 보편이 미리 주어져 있지 않다면 판단력에 의한 특수의 포섭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즉, 작품의 특수성은 보편의 토대 위에서 작동한다는 것이며, 비평가의 과제는 자신의 해석이 어떤 공통감각(common sense)을 딛고 도출된 것인지, 그리고 공동의 영역으로부터 어떻게 특수해질 수 있는지 해명하는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비평이 모두를 납득시킬 수 있는 언어로 ‘일반’화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보들레르가 「1846년 살롱」(Salon de 1846)에서 한 말처럼 비평이 정당한 존재 이유를 갖기 위해서는 “편파적이고 열정적이며 정치적”이어야 한다.10 ⁋ 언어는 발화 행위자의 목소리, 선택 단어, 호흡, 문체에 따라 매우 다른 이미지를 양산한다. 미술비평에서 이미지를 해석하는 행위가 한 개인의 인상과 주관에 휘둘리기 쉬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비평가는 우리가 구사하는 언어가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내는지 이해해야 할 것이다. 작품에 관한 사실내용을 추구하는 치밀한 묘사와 주해(commentary), 그리고 그리고 묘사로 부터 출현하는 이미지. 벤야민이 강조하는 것처럼 개별 작품은 그것을 수용하는 시대마다 그 시대에 인식 가능한 ‘예언’을 담고 있는 구성물이며, 비평은 작품이 탄생한 시대에서 그것이 의미화되는 세계관을 포착하는 일이다.11 달리 말해 비록 작품 창작 이후의 시간 속에서 쓰일지라도, 비평은 곧 도래할 작품의 언어를 예비해야 하는 방식으로 작품과의 시차를 소거해야 할 것이다. 비평가는 작품에서 곧 읽게 될 언어를 위해 자기 앞에 놓인 이미지들의 역사적 지표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며, 작품이라는 출발 이미지로부터 매개된 언어가 어떤 도착 이미지를 만들어내는지 끊임없이 상상해야 한다. |